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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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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5-10 04:43 조회1,5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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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1. 오늘은 백정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백정이 뭐 하는 사람이었는지 잘 아실 것입니다. 백정은 소를 전문적으로 도살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멸시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기와집과 비단옷은 금물이었고 혼례식 날에도 예복과 말을 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백정은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존댓말을 써야 했고 "너도 말을 해봐!" 할 때까지 아무에게도 먼저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차별은 여전했고 호적에 백정이라는 표시를 함으로써 백정의 자식까지 차별을 받았고 학교의 입학이 불가능했습니다. 

백정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시작이 경남 진주입니다. 1905년에 호주의 의사 선교사인 커를에 의해 진주 봉래동에 진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는 성별, 신분, 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다 교회에 나올 수 있고, 하나님의 구원에는 차별이 없음을 설교하며 사람들을 전도합니다. 이러한 설교에 감동을 하고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진주 옥봉에 사는 백정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옥정에 사는 백정들은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는 못했지만 자체적인 교육을 통해 상당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당시의 육류 산업의 발달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출석함으로 인해 커를 선교사는 기뻐했지만, 교회의 다른 사람들은 커를 선교사와 교회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정과 함께 예배드릴 수가 없다고 여긴 그들은 교회를 떠나겠다고 커를 선교사를 협박했고 결국 커를 선교사는 백정 예배와 백정을 제외한 일반 예배를 따로 드렸습니다. 

1909년 진주교회에 새로 부임한 라이얼 선교사는 이러한 예배가 성경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백정들과 일반인과의 동석 예배를 추진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난리가 났습니다. “백정들하고는 한자리에 앉아 예배를 볼 수가 없다”“만약 하나님을 믿어서 죽은 뒤에 백정과 양반이 똑같은 천당에 가야 한다면 그런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며 교회의 출석과 예배를 거부하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교인이 400명이었는데 300명이 넘게 교회를 떠났습니다. 라이얼 선교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 하면서 7주간 동안 백정과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결국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다시 백정들은 예배에서 추방되어 그들만 따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 백정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시작은 교회가 했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낸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강상호라는 분입니다. 이 분은 양반 출신이고 집이 만석 지기 부자입니다. 3.1운동 때는 독립운동으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던 분인데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과 당시 백정에 대한 차별하는 사회 현실을 보고 스스로 백정이 인간답게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합니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백정들과 함께 형평사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백정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일과 그들의 권익을 위한 일을 합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반대도 많았고 비난과 협박도 많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분에 대한 이야기 중의 하나는 백정의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입양시켜 학교에 보낸 일입니다. 백정은 당시에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백정의 자녀 두 명을 데리고 학교에 데리고 가서는 선생에게 입학을 시켜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러나 백정의 자녀임을 안 선생이 난색을 표명하자 호적을 내밀면서 오늘부터 내 자식으로 입양되었으니 입학을 시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시작한 운동이 결국은 결실을 보아 한국 사회에서 백정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3.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고 비판도 있고 비난도 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과 싸울 때 수 많은 부정적인 의견과 비판 그리고 비난에 직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돌파했고 결국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그들이 했던 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믿음의 돌파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4. 첫 번째로 골리앗은 싸워 이겨야 할 대상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돌파를 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엄청난 키를 자랑하는 거인입니다. 

사무엘상 17:4-5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3M)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57kg)

그는 사울과 이스라엘에 싸움을 도발합니다. 

사무엘상 17:9-11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또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골리앗은 피해갈 수 없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로 보입니다. 골리앗이 얼마나 큰 거인이든, 무슨 말을 하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싸워 이겨야 할 대상입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싸워 이기지 못하면 골리앗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골리앗에 억눌려 살아야 합니다. 문제와 싸워 이기지 못하면 염려, 걱정 그리고 두려움의 종으로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며 싸우길 원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리 삶에 들어와서는 도발을 합니다. 

하나님이 싸워 이기라고 골리앗을 우리의 삶에 허락하십니다.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문제의 주도권을 잡고 문제를 극복하고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이스라엘은 골리앗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며 감히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싸우자고 도발하는데 이들은 절대로 골리앗을 이길 수 없다고 믿고 있으므로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눈은 강한 골리앗과 왜소한 자신들만 보고 있습니다. 그들의 귀는 골리앗의 말만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싸우기를 포기합니다. 

절대로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은,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시련과 문제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계십니까? 엄청난 현실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한 자신을 보고 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수많은 부정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문제와 싸워 이기길 원한다면, 현실을 극복하기 원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에게는 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려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이 믿어지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은 골리앗보다 크고 위대하십니다. 지금 우리 앞에 어떤 문제가 있든 그 문제보다 크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골리앗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싸워 이기라고 골리앗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돌파할 때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5. 두 번째로 믿음의 돌파를 위해서는 큰형 엘리압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는 조롱하는 자이고 비난하는 자입니다.

사무엘상 17:28 큰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의 큰형 엘리압은 골리앗에 대해 분노하는 다윗에게 오히려 화를 냅니다. 하던 일은 어떻게 하고 왔냐고 조롱합니다. 다윗은 평소에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압은 마치 다윗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듯이 판단하면서 다윗이 교만하다고, 완악하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합니다. 교만하고 완악한 사람은 엘리압 자신입니다. 

엘리압은 골리앗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골리앗을 이긴다, 못이긴다가 관심이 아니라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엘리압의 말은 다 인신공격입니다. 엘리압은 말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말로 낙심시키고 절망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생각하면 반드시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묵상할 필요도 없고 싸울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엘리압과 싸우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입니다. ‘너나 잘하세요’

어떤 일을 하든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은 어디에나 꼭 있습니다. 그 사람이 가족일 수도 있습니다. 남편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습니다. 부모일 수도 있습니다. 목사일 수도 있고 장로일 수도 있습니다. 친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엘리압은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늦은 나이에 무슨 공부냐, 지금 일이나 잘해라” “잘난척, 있는척 하지 마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 비난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아바비아 사람 게셈입니다. 쫓아 다니며 방해하고 음해하고 낙심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과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말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압은 남들 보기에는 뛰어난 사람이지만 별 볼 일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16:6-7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엘리압이 사람을 절망시키고 낙심시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나도 못하는데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나도 못했으니 너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엘리압은 불신의 사람이며 시기하는 사람이고 절망시키고 낙심시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말을 듣고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쉽게 사람 말에 절망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보와 지식으로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으십시오. 엘리압의 비난의 말을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멘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엘리압은 하나님이 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비난과 조롱과 모욕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6. 세 번째로 믿음의 돌파를 위해 사울의 말에 동의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사울은 매우 친절하게 상황을 매우 정확하게 분석하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소년이고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이기 때문에 골리앗과 싸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고 똑똑한 사람의 말입니다. 

믿음의 돌파를 위해 사실 제일 조심해야 할 대상이 사실은 사울과 같은 사람입니다.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현실에 대해 분석하고 말해주기 때문에 이런 사람의 말에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경우 이런 사울의 말에 동의할 가능성이 큽니다. 열등감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기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의 말에 현혹됩니다. 

사울은 믿음을 버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므로 자신이 싸우지 못하고 자기 대신 싸울 사람을 찾고 있고 상을 내걸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은 가지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 때문에 주저하고 포기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 현실에 안주하고 포기하고 인간적인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영이 망가지면 인간은 철저히 육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골리앗을 이기고 세상을 이깁니다. 결국, 믿음으로 골리앗과 싸워 이긴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보십시오. 

사무엘상 17:45-4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을 들고 싸우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싸우러 나왔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골리앗의 승리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이 다윗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어떠한 문제와 극복해야 될 환경이 있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보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가 가진 칼과 창과 단창 때문에 떨지 마십시오. 엘리압이 비난하고 조롱한다고 해도, 사울이 정확한 현실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어떠한 문제든 극복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믿음으로 결국에는 이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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